롱블랙_최욱 : 사람은 죽어도 건축은 남는다, 시간을 기획하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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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감각, 감정

롱블랙_최욱 : 사람은 죽어도 건축은 남는다, 시간을 기획하는 디자이너

by 당편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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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쿠킹 라이브러리, 설화수의 집, 오설록 티하우스 모두 최욱의 작품입니다. 삼일빌딩, 학고재 갤러리, 정식당,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도 그가 설계했죠. 

 

건축가로서 생각하는 좋은 공간 역시, 사람이 편안한 공간입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갈 때 우리 피부가 온도, 습도를 다 느끼잖아요

 

베니스에서는 건축 공부가 곧 철학 공부였어요. 시간을 기획하는 법으로서의 건축을 배웠지요. 

 

베니스란 도시가 이미 300년 전, 건축적으로 완성됐기에 그렇습니다. 습지대였던 베니스는 흙을 부어 간척해 만든 인공도시에요. 17세기 이후로는 더 지을 공간이 없을 만큼, 빈틈 없는 도시이죠. 

 

'배 위에 짓는 건축이기에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고, 그렇다면 더 이상 베니스의 기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알도 로시의 생각이었습니다. 역사적 상실이 발생하는 것이죠. 실제 극장은 불태워졌고 ‘자살하는 건축’이란 별칭을 얻었어요.

 

원래 갤러리였던 장소를 디자이너들을 위한 공공 도서관으로 바꿨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이었어요. 공간을 사용할 디자이너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관찰 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책을 읽는다(reading)기 보다는 봅니다(skimming). 또 동시에 여러 권을 봐요. 슈퍼에서 쇼핑하듯 꺼내고 비교하죠. 그래서 디자인 서적은 보통 크고 화려합니다.

 

결국 공간의 분위기, 그리고 감성을 디자인한 거예요. 이러한 나의 건축을 두고, 사람들은 디테일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나의 건축은 결코 디테일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공간이란 본질을 추구하다 보면, 디테일은 그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의 공간감이 필요할지 고민하며 연극 공연장을 공부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극장 맨 뒤의 관객석 거리는 24m가 넘지 않더군요. 더 멀어지면 배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도 불상의 표정이 보이도록, 공간의 최대 길이를 24m로 제한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은 시간을 기획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죽어도 건축물은 남잖아요. 건축의 역사는 인생의 범위를 초월해요. 그래서 건축가들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고려하고, 미래에 어떻게 남겨질지까지 기획해야 합니다.

 

또 두 공간 모두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되, 털어낼 부분과 남길 부분을 면밀히 살폈어요. 이런 과정 끝에 각각 매장과 카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됐습니다. 이 작업은 창의적 복원이라 부릅니다. 

 

건축물은 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자리 잡은 땅에 따라 자라는 방법도, 모양도 달라집니다. 즉 그 장소에 맞는 성격, 로컬리티locality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풍토와 기호, 문화가 다른데, 건축물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내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판단이 안됐습니다. 내 주관은 없고, 나라는 사람이 ‘정보’로만 구성돼 있는 것 같았죠. 2년을 쉬었습니다. 내가 건축을 정말 해도 되는지, 2년 동안 생각했습니다.
해결이 나지 않았어요. 2년을 쉬면 머릿속 안개가 걷힐 줄 알았는데, 그대로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들였습니다. 해결을 못하고 헤매는 게 나라는 걸요. 결국 다시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전보다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아침 일찍 해를 보면서 책을 읽고 일기를 씁니다. 월화수목 열심히 일하고, 금토일에는 바닷가에 있는 집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상은 반복되지 않는, 습관이 아닌 소소한 일상입니다.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려고 해요. 이런 일상들을 기록하면서, 저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https://www.longblack.co/note/318

 

나는 있잖아 정말 빈틈없이 행복해
-성시경 '너의 모든 순간'

 

 

'빈틈없이' 란 단어가 좋다.

헤매는 것도 나라는 걸 수용하는 태도가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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