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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배르벨 바르데츠기 지음) : 왜일까? 매년 이 책을 손에 잡게 된다.

by 당편 2022. 9. 23.

마음상함을 주제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난다. 외부의 자극에 민감해서 매일 커피마시듯 마음이 상했었다. 그래서 이 책에 계속 끌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과 기분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행복하거나 화가 나는 건 걔 때문도, 그 새끼 때문도 아니고, 욕나오는 상황 탓도 아니다. 내 감정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짜증나는 상황이, 누군가는 무덤덤한 일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건 내 몫이고 내 책임이고 내 소관이다. 타인이나 상황 탓하지 말아야 한다. 탓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겪지 말아야 할 것을, 겪지 않아도 좋은 일을 겪어서 잃은 것들. 받아야 했으나 받지 못한 것들. 모두 내 잘못이 아니다. 서럽고 분하지만 잃은 것이든, 받지 못한 것이든 그걸 채워야 하는 건 나였다.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존재는 나 뿐이었다. 받고 싶고, 듣고 싶었던 것을 타인에게 했었다. 이제는 진지하게 나에게 묻고, 최선을 다해 나에게 해줄 선택만 해야지.

힘이 든다, 힘을 쓴다, 힘을 집중한다. 같은 말 같은데 다 달라. 나는 늘 힘이 들었고, 힘을 쓴다고 여겼다. 힘을 집중한다고 생각해봐야지.

읽을 때마다 받아들여지는 게 달라서 놀랍다. 어느 때는 가독성이 떨어져서 졸리기만 한데, 어떤 때는 또 술술 잘 읽히기도 한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었다...


172 그가 자기 쪽으로 몸을 돌려서 안아주기를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바라면서도 말입니다.

173 잉게는 아예 그에게 등을 돌린 자세입니다. 이때 남자 친구는 바로 그 점을 눈여겨보면서, 이것을 잉게가 자기를 거부한다는 신호로 해서합니다. 자기는 잉게와 다정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그녀의 거부에 다친 그는, 이번에는 자기 쪽에서 돌아눕습니다.
우리가 겪는 심한 마음의 상처 가운데 하나는, 상대에게 사랑을 거부당하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마음에 받는 상처는, 일차적으로 열등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부를 경험하면 우선 자기가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다, 퇴짜맞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174 배우자가 떠났는데 어떻게 자기가 온전하고 사랑스런 여자일 수 있느냐는 생각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좋은 인상은 자꾸 사라지게 됩니다. 상처를 받는 건 이것 때문입니다. 자존감을 스스로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175 상대도 나와 똑같이 고통을 겪으면 내 고통이 좀 덜어질 거라는 희망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이 희망이 착각이었음은 금세 드러납니다.
배우자 상실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우자한테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상대를 놓아버려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배우자 없이 자기 길을 계속 가야 합니다.

178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내담자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수긍해야만 할 때, 마음이 쓰디씁니다.

183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나한테 얘기해주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185 남에게 자기 자신을 알릴 줄도 몰랐고, 자신을 이해하도록 남에게 기회를 줄 수도 없었으니까요.

187 선의로 했던 질문에 모니타 슈베르트가 마음을 다친 것은, 그로 인해 그녀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입니다.

190 나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신념과 직접 충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스스로가 부과한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남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겁을 잔뜩 먹고서 어쩔 줄 몰라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191 이레네는 남자가 자기를 떠날까 봐 겁을 냈습니다. 토마스는 여자 손에 잡혀 꼼짝못하게 될까 봐 겁을 냈습니다. 이레네의 아물지 않은 상처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토마스의 상처는 독립된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고통이었던 것이지요.

192 완결되지 못한 개인사로 인해 비롯되는 직접적인 결과로, '반복 강박삭'속에서 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문제가 내면에서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그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상대가 떠나갈까 봐 겁내는 이레네가 발견한 남자는 공교롭게도 언제나, 그녀에게 바로 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 겁니다.

193 어떤 만남이나 상황에서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의 느낌을 믿어야 합니다. '별일 없을 거야' 하는 식의 이성적 판단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좋은 뜻과 노력으로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깨끗이 포기해야 합니다.

203 시기심을 내놓고 얘기할 용기를 가질 때,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낼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쯤 되면 시기심은 우리가 소유하지 못한 것,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이 새로운 길을 기뻐하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206 시기심이 주로 만족되지 않은 소망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두번째 단계에서야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데 이르는 반면, 질투의 일차적 원인은 자존감이 위협당하는 데에 있습니다. 상대에게 이제는 우리가 제일번이 아니라는 것, 우리말고 다른 무엇 또는 누군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등의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나 일을 질투하게 합니다.

207 아냐는 나중에, 남자 친구의 그 말일 얼마나 자기 가슴을 갉아대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고는 남자 친구의 말에서 뭔가 이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꼬투리를 잡아내려고 애쓰는 한편, 자신도 날씬해 지기 위해 앞으로는 식사량을 줄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가 지금 무얼 하려고 하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상상을 멈추고 자기의 장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208 남자 친구가 그런 식으로 다른 여자에 대해 말해서 자기가 몹시 마음을 다쳤다는 것을 선선히 시인했습니다. 그런 다음 마음껏 기분 나빠했지요.

215 항상 남과 다르기를 원하고 자기 식으로 살며 그것이 어려워지면 심술을 부리면서 그만두고 마는 행동 양식을 낳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조건 붙이고 규칙을 정한 대로 되어야 해요 .그게 안된다면 내가 나가면 되지 뭐. 인생에서 발을 빼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도가 넘게 술마시기, 끝없이 먹어대기, 구토, 단식, 게임 중독, 일 중독, 텔레비전 중독, 마약 복용,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인터넷 쇼핑까지 그야말로 긑이 없지요.

218 상처를 받느니 차라리 내가 먼저 등을 돌리자는 원칙
이러한 삶의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하고, 어쨌든 현 상태에서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220 거기서도 항상 좀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기만 할 뿐, 만족이란 아예 없었습니다. 더 많이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만 시달릴 뿐이었지요. 어쩌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라치면 바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다시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일을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남들이 자기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화를 냈습니다.

221 "...부모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잇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 얘기를 하면서 그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때 부모한테서 '내쳐진' 경험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난 삶에서 보상받을 게 있어. 그가 나를 속인 데다가, 아주 중요한 것을 내게서 빼앗아가 놓고는 그 값으로 아무것도 갚아주지 않고 있잖아. 하는 생각요. 그러면 분해서 어쩔 줄 모르게 되지요."

222 그는 속았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원상 복구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걸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행복으로 돌아갈 길이 없기 때문이지요.
옛날에 상실했던 것들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223 만족감은 사람의 내면에서 솟아납니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과 삶을 업신여길 이유가 저절로 없어집니다. 먼 미래에, 먼 목표점에 도달할 필요 없이, 지금 여기서 이미 그 성취감을 맛보았으니까요. 지금 내적인 충만감을 맛보는 것이야말고, 마음상함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227 마음상함의 단계. 첫째 단계 : 심하게 마음을 다침 / 둘째 단계 : 마음상한 상태 / 셋째 단계 : 마음상함을 추스림
심하게 마음을 다치는 단계에서는 분노와 무력감이 생기고 사고 기능이 저하됩니다. 혼자말로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는가 하면 배, 심장, 머리쪽에 신체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228 제2단계는 마음이 상한 상태로, 이때 마음상한 사람이 주로 의식하는 것은 분노, 화, 절망과 실망입니다. 버림받거나 퇴짜맞을까 봐 겁내는 마음이 이러한 반응들의 원인입니다.
마음상함에서 빠져 나오는 한 걸음을 내디는 일, 이를테면 자기를 괴롭힌 사람에게 가서 따진다거나 아니면 차라리 양보해버리는 일, 또는 자기의 완고한 생각을 버리는 일 등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게 되므로 처음부터 아예 제외시켜버립니다. 이들의 사고는 '항상' '모든 것' '절대 다시는 안...' 그리고 '몽땅'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극단성을 띱니다.

229 마음상함을 추스르는 셋째 단계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이를테면 산책을 한다든가, 자전거를 타거나 해야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그냥 울어버리거나, 아니면 욕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노가 치솟을 땐 유리창을 닦거나 다른 육체적 일을 하는 것이 상처를 씻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상한 장면을 일단 떠나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태를 수습하는 첫걸음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 있습니다.

231 관계 자체를 희생시키면서라도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모른 체하는 것이 부족하고 상처받은 자기 모습을 내보이는 것보다 쉽게 생각될 때가 자주 있습니다.

232 마음을 다치는 것이나 또는 상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절대로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강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상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 채 방치되었는지를 깨닫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일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남들이 그를 이해하기도 쉬워집니다.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기 표현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게 되지요.
자신의 욕구와 상처를 알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상대가 자기를 조롱하거나 비꼬지 않고 진지하게 대해줄 거라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233 아무도 자기 감정을 경시하거나 비웃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야 내담자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고, 자기의 그러한 행동이 이해받는다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상함에서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표현해도 절대로 공격받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문제의 그 상황에서 무엇이 그토록 자기 마음을 건드렸는지를 내담자가 이해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예전 어린 시절의 어떤 상처와 느낌이 갑자기 살아났는지, 그리고 지금 원하는 무엇이 그 때문에 채워지지 않고 있는지를 가려낼 수 있다면 내담자는상황을 새롭게 보면서 그 상황에 처한 자신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의해낼 힘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34 마음을 다친 것에만 골몰하던 데서부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하는 쪽으로 생각이 차츰 나아가게 됩니다.

235 마음상하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이야말로 바로 사람을 헤어지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239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느 길은 한마디로 관계를 끊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교제를 완전히 끊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상한 상황으로부터 내면적 또는 이형적으로 물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거리를 둘 수 있다면 관계를 단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를 폄하할 필요도, 상처 입은 분노와 복수심에서 우리를 진정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분노는 건설적으로 다독여 남들과의 선을 긋는 힘으로 이용하면 그뿐, 막강한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240 내면의 자부심을 극복해내겠다는 결심이 그것입니다.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자만에 가까운 우월감입니다. 이런 우월감을 극복한다는 것은 자신을 남 위에 세우는 대신 남과 똑같은 위치에 자리잡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을 내려다보지 않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춘다는 뜻이지요. 남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남과의 접촉을 중단하는 대신 남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잘못된 우월감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마음상함이라는 현재의 사건 뒤에는 그 이전의 원초적인 마음상황, 다시 말해 어릴 때 경험한 퇴짜, 거부, 무서운 충격 같은 기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음상함이 계기가 되어 그와 결부되어 있던 내사와 불안, 채워지지 않은 욕구 등이 모두 되살아나는 것이지요.

241 현재의 마음상함은 과거의 근원적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줍니다.
언젠가는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예전의 그 상처받던 상황을 반복하여 상연하는 격이지요. 이러한 마음상함에서 벗어나려면 내사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소화할 수 없는 지침, 자기를 옭죄는 금지 사항 같은 것을 해체하겠다는 목표를 갖고서 말입니다.

242 그녀의 상처가 제공한 내사는 '너를 원하지 않는다'였지요. 남이 자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실 남자가 진심으로 사랑해서 배우자로 선택한다고 해도 그녀가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자기가 믿는 바에 따라 실비아는 무의식 중에, 사랑이 깨지거나 아예 생겨나지 않도록 항상 상황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남들이 자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보인 셈이지요.

243 자기 부모에게까지 이르고, 어린 시절 홀대받았던 장면들을 기억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버림받은 느낌을 잘 갈무리해가는 한편, 그 느낌에서 비롯된 고통과 분노를 의식하고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 내사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남들이 반기는 인물이며,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고 그 역시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다"였습니다.
다시 그것과 비슷한 일에 맞닥뜨려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견해와 태도를 견지할 때에야, 배로소 이것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데 과거의 내사에 따라 행동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느냐 하는 선택권은 항상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244 내사를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웅리는 거부당하고 상처받은 우리 안의 어린아이, 다시 말해 예전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햇던 부분을 오늘날에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당시에 남들이 그랫던 것과 비슷하게 우리도 이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거부합니다.

245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겁을 먹고 공포에 질려 있는지르 느끼게 되었을 때, 그리고 이 불쌍한 아이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았을 때, 그녀의 마음에 동정심이 싹텄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를 위해 그 아이와 함께 울고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실비아는, 운다고 아이를 질책하고 그 때문에 이벤에는 아이를 사랑해주지 않는 행위를 중지했스니다. 대신에 그 아이를 애정으로대할 수 있게 되었지요.
실비아가 이 아이를 받아들이자, 남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사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246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그의 에너지를 억제하는 내사는 아마 이런 내용일 겁니다. "욕구가 생기는 대로 다 따라 해서는 안 되지. 주책없는 일이야" 그러면 그 배고픈 살마은 그냥 눌러앉아 잇든가, 아니면 부엌까지 가지만 먹을 것을 꺼내오지는 못합니다. 배는 계속 고프고, 독서에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끊임없이 '먹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쪽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지요.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는 먹는 일과 읽는 일, 그 어느것도 즐기지 못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내사 쪽에서 보면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할 수 있씁니다.

247 내사를 버리거나 바꾸고 나면 우리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 그 결과 다른 새로운 경험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춘 상태가 된다는 말입니다. 더 많은 경험, 새로운 경험을 할 용기를 내고, 커다란 위험도 감수할 태세를 갖추며, 지금까지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일을 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려서도 훨씬 유연하게 대처하게 됩니다.
사랑받을 기회를 더욱 많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한편, 누군가가 자신을 정말로 좋아할 때 뒷걸음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주제를 발견해내고 그 주제와 결부되었던 내사를 바꿈으로써, 그녀는 자아를 향상시키고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251 아이 때의 감정들 쪽으로 다시 미끄러지면 안 되는 것이지요.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뻣뻣하게 당기는 것을 통해, 소냐는 자기가 아이 때의 감정으로 되돌아갔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몹시 놀랐을 때 나타나는 것과 흡사한 몸의 반응이었습니다. 이 신호는 앞으로 또다시 예전 식으로 반응할 위험에 처할 때 그녀가 그 사실을 의식할 수 있도록 경고 역할을 해줄 겁니다.
이때 곧장 자기의 불만을 토로했다면 참 좋았을 겁니다. 자기는 그런 식의 말을 들으면 갑자기 갈등을 느끼거나 죄책감을 갖게 되니까 되도록 즉시 비판하는 일을 좀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면 말입니다.

252 대화가 말다툼으로 번질 것 같으면 잠시 이야기를 중단하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 다투던 경우들을 돌아보면서, 그때 자기가 느꼈던 어려운 점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아빠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자신의 소망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남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자기 일을 자기 뜻대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느낄 때에만 당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이 거부하거나 비판해도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다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늘 똑같은 다툼을 일삼지 않게 됩니다 .

253 자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지요.

254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정도가 클수록, 남이 자기를 비판하거나 거절할 때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자존감이 불안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면적으로 다음 세 가지 체험 영역, 즉 찬란한 자기 모습, 열등감, 실제가 서로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55 열등감. 자기 불신. "나는 가치 없는 존재" / 찬란한 모습. 이상. 완벽주의. "나는 위대한 존재" / 실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장단점이 다 있는 존재"

256 자신의 장단점을 느끼지 못하고, 그 대신 자기 내부의 극단적인 면만을 감지합니다. 자신을 전혀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자기가 정말 누구인지를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가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다 보면, 급기야는 내가 살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까지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상함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선 자신과 남, 그리고 세상에 대해 너무 높은 기대와 이상을 가졌다면 그것부터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항상 이백 퍼센트 잘 하고 제대로 해내야 성에 차는 사람이 있따면 그가 마음상함을 겪을 가능성은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실수할 여지를 자신에게 하나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지요.

257 자기가 전혀 무가치한, 또는 가치가 거의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좋은 점을 찾아보고 또 발견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열등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열등감의 주인이 반드시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자신의 가치 있고 발랄한 면, 창조적이고 유쾌하며 똑똑한 면에 관심을 집중적으로 기울이는 것도 역시 한 방법입니다.

258 몸짓이나 색깔, 음악, 소리, 그림 또는 말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일은 자아를 강화시켜줍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다 '잘 했다'거나 '못 했다'는 평가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마음상한 감정과 열등감을 창조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어떤 색깔을 쓰고, 어떤 모양을 택하겠습니까? 마음의 상처를 음악으로 바꿔보라면 당신은 어떤 악기를 갖고 소리를 내고 싶을까요? 또 몸으로 표현하라면 당신에게는 어떤 동작이 이 주제에 맞추어 떠오를까요?

259 당신은 당신의 그것-기능, 즉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당신을 당신의 실제, 당신 자신, 당신의 욕구와 감정 상태로 곧바로 데려갈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된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 당신의 이른바 '참 자아'와 만난 것입니다. 이 참된 자아 안에서는 자신이나 남에게 아무것도 일부러 꾸며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한마디로 사실 그대로 있으면 됩니다.

260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를 비하할 필요도 없고, 남들이나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기대했다가 그대로 받지 못했다고 해서 박대당한 것처럼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바깥에서 오는 모든 일을 우리와 개인적으로 관계된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이 곧 우리 책임이라거나 실패라고 해석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를 비판하는 말이 부분적으로 우리와 관계된 것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판하는 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는 한, 우리에겐 자기 연민에 빠질 기회가 없습니다. 자기 연민이란 우리가 모욕감을 느껴서 접촉을 끊고 물러날 때에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261 자기 나름의 마음상함 속으로 뒷걸음질치지 않고 상대와 함께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상한 반응을 보이는 대신 우리 자신의 솔직한 감정, 즉 상처와 그로 인한 슬픔, 분노, 그리고 두려움과 욕구까지도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61 대화를 통해 무엇이 그렇게 아팠다든가 상대에게 정말 받고 싶은 것, 내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다는 말을 털어놓고 나눔으로써, 우리는 상처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을 자신에게 열어놓게 됩니다. 비판 끄트머리에라도 나를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쯤은 해주길 기대했다든가, 퇴짜를 놓은 다음에는 다시 애정을 갖고 대해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음으로써, 관계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두 사람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동반자가 됩니다. 마음이 상한 채로 자기식의 힘없는 희생자 역할을 자저하는 대신 말입니다.

262 상대와는 다른 자신만의 욕구와 생각을 가지며 그 생각대로 살 권리가 있는 독립적 인간이라고 자기를 인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은 그 불평에서 정말 문제가 된 것은 남자의 무질서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 두 사람의 문제를 이렇게 그려냈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하지만 나는 빼줘. 나와 함께 살고 싶다면 당신은 내가 원하는 당신으로 있어줘야해"라고 말입니다. 남자 친구가 자신의 방식을 지켜주지 않으면 그녀는 마음이 상하곤 했습니다.

263 남자 친구의 무질서함을 좋아할 필요까지야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 일로 인해 그를 거부할 만큼 상처받고 분노하는 것도 정당한 일은 아니었지요. 자기가 원하는 꼭 그대로 그가 있어주어야 마음이 편한 그녀였으니, 결국 그녀는 그에게 매여 사는 셈이었습니다.
머물러 있지 않고 건설적인 관계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우리 대신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결정은 우리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엘케 만은 상담 치료를 도중에 그만두려 했습니다. 상담소에서 우연히 자기보다 멋지게 생긴 여자와 마주치자, 내가 자기보다 그녀를 더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치에, 그리고 자신이 내게 특별히 중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소망에 상처를 입은 것이지요. 그때 그녀에겐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상담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 선택은 접촉을 끊은 채 나와 자기 자신에 대해 쓰디쓴 기분을 맛보면서, 결국엔 자기가 전혀 중요한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것으로 끝이 날 겁니다. 이것은 그녀가 자기 문제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모든 잘못은 나와 그 어떤 내담자에게 '미뤄진 채로' 남겠지요. 나 역시 그녀가 상담을 받으러 더 이상 오지 않는 것에 몹시 실망하고 화를 냈을 겁니다. ... 이 일은 아주 불쾌한 느낌을 주는 미해결 과제로 계속 남아있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엘케 만은 다른 가능성을 선택했습니다. 나와 접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내게 전화를 해서, 상담 치료를 그만두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연락을 취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태도가 자신에게도 전혀 새로운 것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자존심 때문에라도 글너 일은 결코 시도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엘카 만은 자신의 마음상함을 똑바로 보고 인정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내게 전화를 건 행동은 그녀가 자신의 불쾌함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한 증거입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 내게도 기회를 한 번 준 것이었습니다.

264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염려는 나에 대한 그녀의 투사였을 뿐, 그녀에 대한 나의 실제 태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호감이 많았던 나는 함께 상담하는 걸 매우 즐거워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그녀가 깨달은 것은,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건 자기 손해일 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발만스런 상태로나마 그냥 놔두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덧난 곳, 자기쪽에서 먼저 자꾸 관계를 깨게 되었던 근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같은 문제를 다르게 해결할 수 있었던 건 물론입니다. 그녀의 세 번째 성공은 희생자를 자처하는 태도를 던져버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손수 구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상처 부위가 이 한 번의 경험으로 완전히 나을 수는 없습니다.

266 덧난 상처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아, 마치 지금까지 아무 변화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새로운 대처 방법을 배우고 예전의 태도를 극복할 때까지는 몇 번이고 이러한 체험을 반복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우리가 조금씩 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의 그 두려움과 나란히 새로운 싹이 우리 내면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문제의 그 상황에서 전혀 마음상함을 겪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전에는 그럴 때 늘 속이 상햇는데 말입니다.

268 우리는 지금 맞닥띌고 있는 형상, 즉 체험을 자신의 배경에 따라 각각 다르게 해석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어 자존감이 희박한 사람과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체험을 많이 해서 자존감이 확실한 사람은 같은 비판을 받아도 저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마련입니다.
비파을 받으면 자신의 업적과 인격이 거부된다고 느낍니다. 반면 뒤의 사람은 비판을 오히려 자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격려로 받아들여, 자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갑니다.
마음상함이란 현상 역시, 특정한 사건에 경시나 모욕이란 '의미'를 결부시킴으로써 생겨납니다. 그러느모 거절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몹시 마음상하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거절당한 체험을 그저 유감스런 일 정도로 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269 의미 부여 행위를 줄일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형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추는 것입니다. ...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는 것, 이른바 관점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마음상하게 하는 거절을 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 인격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시간이 없다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처럼 생각할 경우, 이 거절의 의미는 사뭇 달라집니다. 우리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결과가 되는 것이지요.

269 소파를 바꿔 앉은 후, 이 달라진 각도에서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한 사건을 관찰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극적이 된 당신은 어쩌면 꼭 같은 사건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270 신체의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자리를 빌려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음상함을 딛고 일어서는 일, 마음상하기 쉬운 성향을 변화시키는 일은 언제나 몸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상함을 겪에 하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다든가, 고립 상태에서 접촉으로 옮겨 온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몸을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정리하는 것 같은 행위는 마음상함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몸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변 환경을 새롭게 지각하게 되는 것도 이때이지요.

271 힘이 있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이겠다는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와는 더 이상 아무 관계도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아무 말 않고 있었습니다. 그가 듣지 못할 만큼 소리 죽여 울면서, 이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지요. 사실은 그와 계속 사귀기를 바랐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얘기를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는 이미 그 오래된 마음상함의 태도를 벗어나, 자존심을 꺾고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어선 자세로, 그녀는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을 걸면서 잠시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존심을 꺾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결심, 상대에게 욕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그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 창피까지 무릅쓴 용기, 그 모든 과정을 그녀는 상상 속에서 다 완수했던 것입니다.

272 몸을 일으켜서 그에게 말을 거는 자신의 모습이 객관화되어 보였던 이 장면은 그녀의 내면에 중요한 상으로 자리잡아, 이후 그녀가 마음상함을 겪을 때마다 좀 더 쉽게 그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항상 도움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상대를 향해 걸어갔던 본인의 움직임이었습니다.

273 그녀는 딸의 병을 자신과 결부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독립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74-275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때에는 대게 다음 세 가지 점에 중점을 둡니다. 첫째는 신뢰에 찬 인간 관계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내담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배경을 잘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상태가 마음상함이라는 것을 내담자가 전혀 모를 때가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그 상처가 무의식 속으로 깊이 뿌리내렸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사, 내사와 결부된 두려움, 그 밖에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찾아내는 작업의 목적은, 바로 여러 쪽으로 갈라져 나간 감정들과 인성의 조각들을 내담자가 다시 의식하여 하나로 통합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마음상함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일입니다.

275 마음을 다치게 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가능한 한 사실과 같게 그려내게 하는 것이지요.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을 전부 표현합니다. 화나고 창피하고 슬프고 한 감정들을 말입니다. ... 계속하다 보면 이번에는 자신의 내부에 자리한 두려움을 의식하게 되고, 상처 준 상대에게 자기가 바랐던 게 무엇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게 얼마나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지, 상대와 접촉하는 가운데 자기의 감정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경험하는 것이지요.

276 친구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것이 그녀에겐 아주 중요합니다. 상황이 그쯤 되면, 그냥 흥 하며 돌아설 수도, 기분이 상한 김에 누군가와 말다툼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앙갚음을 할지도 모릅니다.

277 반면에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림을 통해 인정받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다시 한 번 노력해볼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여러분, 너무나 열심히 토론하시느라 그림은 깜박 잊으신 모양이네요. 그중엔 제 그림도 있는데요. 자 이제 그만 이쪽으로 와서 그림 감상 좀 하시죠."라고 직접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예 직접 토론에 참여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자기쪽으로 주의를 집중시킬 수도 있겠지요. 또 마음이 상한 이유를 현실에서 찾아 검토해본 후에 "말 좀 해봐요. 내 그림이 영 신통치 않아요?" 하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녀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면 되는 것이지요.
자기를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를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 모욕감을 느낀 나머지 마음상함 상태로 굴러떨어지는 사태를 어떻게든 피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고 성숙한 인간으로 행동하겠다는, 그리고 건설적으로 상대와의 교제를 계속하겠다는 자발적인 결심이 필요합니다.

278 채워지지 않은 채로 있는 내담자의 욕구와 바람을 분명히 알아내는 일입니다. 상대에게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무언지, 상대가 어떠하기를 내가 바라는지 확실히 알아야만 마음상함을 극복할 수 있고,원하는 것을 얻는데 힘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동경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억압하는 것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그 동경과 욕구를 의식하면 빠져 나갈 길이 보입니다. ... 그러나 자신의 욕구를 확실하게 깨닫는다면, 그것을 총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만족시켜야 할 사람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그 책임을 스스로 질 때, 자신의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상함에 훨씬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상함을 극복하는 열쇠가 되는 단어는 자기를 아프게 한 살마의 마음을 역지사지로 느껴보는 일, 즉 공감입니다.

279 우리는 비판을 받고 즉석에서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마음을 다친 값으로 한 방 되받는 대신, 그리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과 절연하는 대신, 그의 말을 조용히 들어볼 수 있으니 말입낟. 그리고 그제서야 상대는 자기가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왜 하필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그가 비판하는 말을 잘 들어볼 만큼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런 방식으로 공감과 이해를 계속 키워갈 수 있습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여전히 마음을 열어놓는다는 뜻일 뿐입니다. 공감을 갖게 되면 우선 성급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고, 상대를 계속 존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상한 상태에서 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태도지요. 이해심을 자꾸 방해하는 것은 단죄하는 마음입니다.

280 남에게 공감하고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한 우리 자신의 주제넘음을 극복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음상함 속에는 사실 우리가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와 우리의 감정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에게도 과연 이와 꼭 같은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는가요?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니까요.
화해에는 나를 다치게 한 사람과의 화해 외에 자기 자신과의 화해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도착'했다는 뜻으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존중함을 의미합니다. 현재 나의 모습이 아닌 것, 안감힘을 써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닌, 지금 이미 여기 존재하는 나의 모습만이 여기서 말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281 "우리가 행복할 이유는 많고 많습니다." 굳이 마음상함을 겪으면서 불행해질 이유가 있을까요?

282 마음상함은 기대가 어그러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마음을 잘 다치는 사람은 시간을 갖고 기다릴 능력이 없습니다. 무엇에 대해선가 인정을 받고 싶을 때, 그것을 당장 받아야지 나중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나중에 받는 칭찬은 지금 당장 받는 칭찬보다 가치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기다릴 수 있다면, 마음상함은 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느긋함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그냥 흘러가게 놔둘 뿐, 우리 영향권 바깥에 있는 일을 좌지우지하겠다고 힘을 낭비하지 않지요.
내가 사랑하듯 상대도 나를 사랑하기를, 내게 사랑을 선사해주기를 그저 희망할 수 있을 뿐이지요. 내 편에서 상대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것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83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안 되면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도 잇는 마음상함은 여기엔 발 딛을 여지가 없습니다.
이 변화를 시도하려면 통제하려는 욕구를 버려야 하는데, 그 결과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지금 모습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는 아니야. 하지만 당신은 변할 수 있을 거야"라고요. 이때 두 사람은 모두, 상대가 이 말을 들어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실망하거나 헤어지지요.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를 경험해보았을 겁니다. 그랬으면서도 우리는 거듭거듭, 같은 시도를 계속합니다.
상대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면이 있는데, 거기에 대응할 방도를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간섭해서 바꾸고 싶은 겁니다. 자기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는 일과 마주칠 때 사람들은 불안해 하고, 어디선가 그 일을 조종할 수 있는 장치를 찾아내고 싶어하기 때문지이요. 하지만 이때 조종간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통제나 간섭이 아니라 신뢰와 경험입니다.

284 무언가를 남에게 줄 자세가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을 때에야 바로 그것을 남들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강제로라도 반드시 '갖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은 대게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희망을 품고 느긋해질 때, 마음상함이라는 함정을 피해 가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하느님,
제게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일 느긋함을 주소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두 가지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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