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 '북끝서점'에서 만났다. '슬픔의 거인이 왔다'를 보았다. 내 안의 슬픔의 거인이 떠났다.

by 당편 2022. 8. 6.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북끝서점'이 보였다. 언제 버스가 올지 모르지만 시간은 여유로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실내는 그늘진 것처럼 어두웠고 원목 책장과 원목 책상 위에 책들이 여유롭게 놓여있었다.

제주 '하도록'에서 시화집을 산 이후 여행지에서 시집을 사면 좋겠단 생각이 있던지라, 시집이 모여 있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권째에 만난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를 팔랑팔랑 넘겼다. '너는 울었다. 왜 울어? 몰라, 그냥 눈물이 난다고.'의 문장이 손을 멈추게 했다. 92페이지와 93페이지 사이에 '슬픔의 거인이 왔다'가 존재했다.

울음이 터지고, 이유를 몰라서 더 울었고, 이유 없이 우는 것에 지쳐서 또 울었던 시간에 바치는 위령곡으로 충분했다.


슬픔의 거인이 왔다
신용목

거인은 왜 슬플까, 그 큰 몸으로 걸어오며 가리는 햇빛, 거인을 본 일은 없다.
거인의 그림자 때문에.

거인은 계속 자라는 중이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거인은 이야기를 먹고 크는구나,
생각했다.
어느 날 자작나무숲에서 너는 울었다. 왜 울어? 몰라, 그냥 눈물이 난다고.

나는 네가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중이라고, 네가 우는 사이 네 이야기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

울음을 먹고 크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뒷걸음질로 걸어가며 환하게 햇빛을 남기는 텅 빈 마당에서
너를 소리친다.

돌아와, 거인에게 거인의 그림자에게 그림자의 이유인 햇빛과 이유가 사라져 버린 목소리에게.

순간,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춘다면

네 목소리는 꼭 빈집 천장에 치렁치렁 늘어진 전깃줄 같겠지. 그것을 당겨 목에 감으면
나는 한낮의 가로등 같겠지.

누군가 두꺼비집을 올린다면

몇 차례 튀는 불꽃 뒤에서 나는 거인이 될 것이다, 지직거리는 거인의 그림자가.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쳐다보면,

내 어깨를 짚고 내가 서 있었다. 막 깨어난 내가 나를 깨웠던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를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잘 가, 라고 말했다.

아주 짧고 슬픈 인사였다.

나를 깨우고 갔다(신용목) 中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915491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 YES24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사라지는 일들이 있어서”존재하던 것이 사라져버리는 필연적 운명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특별한 시간운용법백석문학상

www.yes24.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