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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18 연애하지 않을 권리(엘리 지음)

by 당편 2022. 4. 19.

 책을 고를 때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몇 문장을 읽고 꽂히면 제대로 읽는 편이다. "나 매력적인 가요?  같이 자고 싶을 만큼?" 이 문장을 보고 이 책을 가방에 넣었다. 

 

'네가 지금 외롭고 공허한 것은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가 아니라 네 자의식을 제대로 표출할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해서야' 책의 끝에서 발견한 이 문장은 내가 찾던 질문의 답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더욱 확신하게 된다. '나의 시각, 나의 언어를 갖고 싶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게 싫은 게 집요하게 물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나의 욕망을 옳다. 

 

 아직은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고 평가하고 있다, 지금은 그렇다. 

 

 

 

101 같은 대사만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나 매력적인 가요?  같이 자고 싶을 만큼?"

 

107 "나처럼 세상 사람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고 싶어? 그럼, 나처럼 '잘 팔리는' 외모와 육체를 가져야 해" 셀럽의 이미지는 남성이 가지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곧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는 전제를 공공연하게 깔고 있다. 

 

109 잡스는 임직원들을 향해 상품이 아닌 이미지를 파는 회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111 상품의 구매로 얻을 이미지에 취해 새 옷과 화장품을 사들이기 시작하는 등 쇼핑에 중독된다. 

 

136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리해야 할 것 투성이인 '이상적인 여성'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왜 여자들은 멍청하게 제 겉모습 치장하는 데만 돈을 쓰냐'라며 비웃는 남자들. 

 

143 타인(남성)에 의해 기준이 세워졌기에 절대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을 '예쁜 얼굴'. 기형적인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는 '육감적인' 몸매. 

 

145 어쩌면 여성들이 오랜 세월 '좋은 남성과 연결'되고자 하는 고질적인 강박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는 자주권, 주체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146 현대 여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들 중에서 남성에게, 가부장에 의존코자 하는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은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성이 되어 그들의 성은을 입는 것이 아니다. 

 

147 메가폰을 잡고 캐스팅과 역할 분배를 전담하던 가부장들에게 찾아가, '내 인생의 무대에서 꺼져 달라'며 저당 잡혀 있는 감독권 반환을 요청해야 한다. 

 

151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야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스름한 생각에 '왜?'라는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152 '남자는 시각적인 동물'이라며 자신들을 여성의 심판자로 명명한 이들에게 '예쁘고 매력적인' 대상으로 비춰지고자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155 쌩얼은 매너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한 메이크업으로 고졸 혹은 전문대졸 경리처럼 보이게 하지 않아야 하며, 힐은 신되 너무 화려한 색감이나 굽이 지나치게 높지 않은 걸 신어야 한다. 

 

157 나는 가부장제의 남성 수호자들에게 '내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허락과 피드백을 구걸하는 삶을 살아왔다. 스스로의 가치를 주체적으로 매길 수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해주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164 '그래도 넌 멋져. 유능해. 내 눈에는 그깟 꼰대들보다 네가 더 멋있어 보여. 기운 내.'라고 말해주는 이는 남자친구밖에 없었으니까. 그것이 입바른 소리든 뭐였든 간에, 심신에 금이 간 상태에서 사기꾼들의 꿀 바른 거짓말에도 위안을 얻는 게 사람인 법이다. 
...무언가 잃었다. 잃어버린 자리에는 다른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191 남 듣기 좋은 말만 앵무새처럼 지껄여야 하는 '멀쩡한 여자 친구' 타이틀보다 차라리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밤. 

 

218 결국 뻔하고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구나, 나도. 바다가 아니라 마트의 통조림 코너에나 어울릴법한 인간이 되어버린 거야. 

 

232 이 사회가 나에게 원하고 바랐던 모습이 아닌,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내 모습을 찾기 위해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던 시간들. 내 안의 그녀의 생각을 묻고,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존중해줬던 때.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무 조건 없이도 평상시 모습 그대로 내 인생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234 나는 사랑받는 삶 대신 나의 삶을 택하기로 결정 내렸다. 의존적인 행복 대신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삶을 택한 것이다. 

 

239 확실한 것은, 이제 손에 쥐고 있는 운전대로 난 어디든 갈 수 있고, 더 이상 누군가 정해준 길 위에서 남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242 '네가 지금 외롭고 공허한 것은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가 아니라 네 자의식을 제대로 표출할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해서야'라고 말해주는 선배나 친구가 있었다면,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는 대신 내 관심사와 관련된 세미나를 쫓아다녔을 것이다. 나를 가장 열심히 돌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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