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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한주)살기

한주살기) 경남 남해_팜프라촌 : 9/2 금 D+4 (제멋대로 바지락국수, 사진 촬영, 텃밭 체험, 금산참능이)

by 당편 2022. 9. 11.

 

 8시 30분, 가벼운 숙취로 인해 늦은 아침의 시작이었다. 공용 공간에서 노트북을 켜고, 통유리창을 통해 빗소리를 보는데 평온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침 겸 점심으로 어제의 바지락 국수 만들기를 시도했다. 실패도 성공도 아닌 시도에 의미를 둔 어정쩡한 맛이었지만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잠깐의 대화와 정리를 끝내고 다시 공용 공간으로 돌아갔다. 유지황 대표님과 마주했다. 본의 아니게 좋아하는 것과 수익 창출에 대한 연결이 현재의 화두라고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냥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고 하셨다. 어차피 100을 계획해도 실행했을 때 계획대로 되는 건 10~20 정도였다고 말이다. 빨리 실행해서 문제를 마주하고 처리하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계속 곱씹게 되는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대화였다. 

 

  오후에는 예정된 사진 촬영을 했다. 촬영의 시작은 공용 공간의 평상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어색해하자 아기 백일 사진 촬영하듯 웃겨주셔서 꺄르르르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다. 글을 쓰며 다시 떠올리는데 입꼬리가 올라가는 감사한 순간이다. 

 

 되고 싶은 이상향 같은 사람과 이슬비를 맞으며 산책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자연스럽고, 하고 싶은 싶어서 하는 것이 나에게는 노력의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타인과 닿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이곳에선 그것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들의 말이, 태도가, 글이, 생각이 마음에 기분 좋은 파문을 만들었다. 

 

 

오후에도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그 비를 맞으며 코부기 옆에 있는 작은 텃밭에 배추 심기를 했다. 돌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돌반 흙반이었다. 그래서 돌을 바지락이라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 어느 정도 돌을 제거한 후에는 흙을 평평하게 해 주었다. 윗부분의 흙과 아래에 있던 흙을 바꿔주고 도랑을 만들었다. 도랑을 만들고 비료를 뿌렸다. 빼낸 돌로는 돌담을 쌓았다. 코부기 뒤에는 감나무가 있는데 할아버지가 감을 주우러 오시니까 가지런히 쌓아야 한다는 말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방수가 안 되는 외투는 체온을 지속적으로 빼앗아갔고 추워서 얼른 따스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다락방에 올라가서 낮잠을 잤다. 

 

 일어나자 따끈하고 하얀 국물이 먹고 싶어졌다. 첫날 먹었던 순대국을 먹으러 출발! 두 번째 먹는 건데 처음 먹었던 것처럼 맛있었다. 먹고 나오니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무지개가 보였다. 회색빛 하루가 무지개로 칠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무지개를 본 우연에 감사했다. 일몰 대신 찰흙처럼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웅장한 먹구름을 볼 수 있었다. 수채화 같았던 구름이 생생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게 재밌었다. 

 

 잠시 비가 그쳤고, 옷이 펄럭이는 바람을 뚫고 방파제에 올라가보았다. 누군가에게 혼날 것 같아서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과 마을의 불빛은 세상의 왕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팜프라촌의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저기압 상태일 때 밝으려고 무리하지 않을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나답게 있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고 밤 산책을 했다. 공용 공간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과 잠시 어울리고 또 산책을 하고, 또 산책을 했다.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어서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남해의 바다처럼 잔잔하게 다가와 나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말을 건넸다. 그의 말은 의지할 동아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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